3박4일 동해안 일주 2-2일차 : 날은 저물고 앞길은 미궁으로... 자덕

앞편을 안보신 분들은 이쪽으로
3박4일 동해안 일주 2-1일차 : 지옥의 강원도 돌파

 앞 글을 애매한 곳에서 끊었는데, 이쯤에서 이번 여행을 계획한 이유를 적어두고 가려는 의도이다. 
 발단은 2007년까지 올라간다. 로드 타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간 나는 그 당시 무수한 자전거인이 입문자에게 추천하던 알톤사의 RCT master(줄여서 알마)를 지른 다음 그당시 룸메까지 포함해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셋이서 제주도 여행을 갔고, 거기서 자전거 여행의 즐거움에 눈을 뜨며 약간의 자신감도 얻어(제주도는 평지라서 자전거 초심자에게 최적의 여행코스) 돌아온 뒤 내친 김에 혼자 전국일주를 떠났다. 출발 후 14일차에 지금 쓰고 있는 2일차 여행기와 거의 같은 코스를 지났는데, 그땐 짐도 무거웠고 몸도-_-무거워서 좀 긴 업힐은 중간에 내려 끌바하면서 참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개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강원도 진입해서 30km도 안 달렸는데 끝도 없이 나타나는 '오르막차로 시작' 표지판에 빈약한 체력은 이미 바닥을 보였고, 500미터마다 길가에 털푸덕 주저앉아 쉬며 거의 기는 듯 언덕 하나를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니 작은 해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구름도 없는 한여름 새파란 하늘 아래 동해안 특유의 깊은 푸른색 바다가 시야를 반으로 가르고, 육지는 짙은 녹색. 차가운 색들이 선명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아기자기한 마을 하나가 바다를 끼고 있고, 마을 바로 앞에 예쁘게 아치 모양으로 놓인 백사장은 뙤약볕 아래서 주변과 강렬한 색 대비를 이루며 이 모든 풍경을 내 기억에 깊게 새겨 놓았다.
 아마 많이 고생한 뒤라 더 각별하게 느껴졌으리라 생각한다. 마침 그 자리에 전망대인지 마루가 깔린 정자도 하나 놓여 있어 거의 두시간 가량을 그 자리에서 노닥거리며 질릴 때까지 보았지만, 그 기억은 25일간의 여행 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나를 다시 7번국도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또 한가지는 2007년엔 속초 도착한 다음 날부터 장마가 오는 바람에 태백산맥을 치트(버스)로 넘은 것. 이번에 속초에서 바로 버스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용문까지 내달리려는 이유가 그거다.
 

그리고 그 장소 근처를 다시 지나게 되니, 저 멀리 정자를 보는 순간 '아 여기구나' 하고 순간 짜릿한 기분이 든다. 아직 고개는 돌리지 않고 일단 오르던 언덕을 끝까지 오른 다음,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도 길 옆에 대충 눕혀 두고 5년만에 다시 눈에 담는다.
전엔 몰랐지만 이젠 gps가 있으니 여기가 어딘지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삼척시 초곡리와 장호리 사이, 용화 해변.


하지만 조금 슬프게도 예전만큼의 감동은 없다. 아마도 구름 가득한 잿빛 하늘 때문에.
대신 7번국도에(엄밀히 말하면 우회로지만)다시 돌아올 구실이 생겼으니 삶이 팍팍해지면 다시 와야지.

해변에 저 천막들도 얄밉고, 요 며칠 온 비로 백사장에는 강이 생겼나 보다.

이 지점에 도착한 시간이 15시 15분인데, 아직 갈 길이 머니 예전처럼 두시간씩 빈둥거릴 수는 없다. 30분정도 쉬며 눈에 꼭 새겨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뜬금없이 찍어본 헬멧. 

후미등은 싯포스트에 장착하는 게 정석이지만 난 이번 여행에 거추장스러운 자물쇠를 달고 오는 바람에 그냥 헬멧 뒤에 꼽아 버렸다-_-.. 뭐 나쁘진 않음. 대신 밤에 뒤에서 보면 불빛이 격하게 흔들려 좀 이상하게 보일 것 같긴 하다.

아점으로 먹은 칼로리도 거의 다 소모했는지 다시 다리에서 앵꼬의 기미가 느껴진다. 밥을 먹자니 해가 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이 아까워 대충 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돌진해(인적 드문 지방도에 편의점이 나타나는 일이 흔한건 아니지만) 에너지 보충

은 편의점표 햄버거 두개.
사자마자 번개같이 흡수해버려서 껍질밖에 못찍었다.


그리고 강원도 진입하고 쭉 나를 괴롭히던 우회도로와도 곧 바이바이.
경치는 지방도가 훨씬 좋지만 오늘은 더 이상 그 업다운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우회도로는 마지막 용트림을 하며 산을 하나 휘돌아 오르고, 전용도로는...(후략)

해안가에 인공물인 널찍한 도로가 어우러지니 또 색다른 맛이 있다.

곧 7번국도를 만남과 동시에 삼척 시내로 진입. 
우회하는 동안 9개의 오르막차로 표지판을 지났더니 x축을 n_표지판 y축을 남은 체력(%)로 하는 그래프도 그릴 기세.

삼척-동해는 지도상으론 거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도시 규모가 있어 15km정도는 가야 한다. 동해시에서 정동진까지 30km정도 된다고 치면 위 사진을 찍은 시점이 17시 15분이니 열심히 달리면 두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다는(즉,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 희망이 생기면서, 동해시까지 숨가쁘게 주파했지만, 사실 신호에 여러번 걸려 한시간이 넘게 시간을 소모했다.

그렇게 점점 초조함을 느끼며 동해시를 빠져나가는데
뒷바퀴가 덜컹 하면서 순간 안장을 통해 노면의 3d맵이 그려지는 듯 하다-_- 펑크다.....
한가롭게 펑크 때우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 펑크난 원인만 찾아 제거하고, 후딱 튜브 갈고 떠나려고 하는데 타이어 주걱이 젖은 고무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통에 한참 실랑이를 했다. 차들 쌩쌩 다니는 4차선 국도의 좁은 갓길에서...심지어 비는 세차게 오는데 그능도 없어서 쌩으로 비 맞으며 겨우 고쳤다. 뭐 사실 하루종일 비는 열심히 맞았으니 여기서 몇분 더 맞는다고 머리카락이 더 많이 빠지진 않겠지....

하필 펑크난 위치가 도시를 막 빠져나가며 옆으로 샐만한 곳이 없는 곳이어서 그냥 갓길에 철푸덕

이 시점부턴 마음도 급하고 어두워지기도 해서 도착할때까지 사진이 없다.


 펑크 시점에서 10km쯤 더 달려 정동진까진 이제 10km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주변은 거의 깜깜해져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아까 고친 뒷바퀴에서 주기적인 진동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해 불빛 있는 곳에서 보니 처음 보는 증상. 타이어가 불균질하게 부풀었다-_-?
정확히는 대부분 일반 타이어 굵기인데 밸브쪽에서만 20%정도 더 두꺼워서 뭔가 징그럽다. 아까 펑크 때울때 비드를 제대로 못 쑤셔넣어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바람 빼고 다시 쑤셔넣고 다시 펌프질하니 또 빠져나오고, 타이어 하나 바람넣는것도 꽤 힘이 드는데 그짓을 세번쯤 하다가 포기했다. 관찰해보니 80psi미만 저압에선 안 삐져나오는 것 같아 일단 정동진 가서 숙소에서 보기로 결정.

 가다 보니 곧 정동진 방면으로 갈라지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제부턴 표지판 따라 가면 되겠구나 하고 낼름 갈라섰는데, 10분쯤 달려보니 길이 좀 심상치 않다. 노면은 새로 깐 듯한 매끄러운 아스팔트인데 가로등은 단 하나도 없고, 좌우 모두 민가 하나, 슈퍼 하나 안보이는 숲인데다 통행인은 나 하나뿐, 지나가는 자동차도 한대도 없다. 숲 너머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건 7번국도가 바로 옆이란 소린데 불빛은 숲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으니 광원이 없어 마치 광산에 들어온 기분이다.. 일단 내가 전조등 후미등을 달고 있으니 남한텐 내가 보이겠지만 후미등은 위에서도 보다시피 헬멧 뒤에 달려있고 전조등은 광도가 좀 부끄러운데다 가방 바로 밑에 위치하고 있어 드라이빙 포지션에선 달아둔 것도 까먹을 정도니...전후좌우 360도, 위까지 합해 2π 모든 방향이 그저 캄캄할 뿐이고 그나마 어슴푸레 중앙선과 갓길 차선이 보여 방향만 잡고 그저 페달을 휘젓는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이쯤이면 누구가 예상하듯 오르막-_-이라는 것. 끝이 어딘지 전혀 알 수 없어 몸으로 느껴야 하는 오르막이다.
 완전 암흑 속에서 혼자 얼마나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바퀴만 굴리고 있으니 살짝 무서워지는데, 갑자기 바로 앞에 희끄무레한 것이 휙 나타나 심장이 떨어질 만큼 놀랐다. 거의 넘어질 뻔 했는데 용케 핸들은 회복하고 일단 정지. 그 괴 물체의 정체는 살짝 어이가 없다. 위에서 말했듯 난 내가 전조등을 켜고 가고있다는 사실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고, 내 앞에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었다. 깜깜하고 전조등은 빈약해서 나뭇가지가 2~3미터 앞에 올 때까지도 전혀 몰랐는데, 가까워지자 가지가 미약한 전조등 불빛을 반사해 하얀 형체로 보인 것이었다.

 어쨋든, 어두워서 속도는 전혀 낼 엄두도 못내고 달팽이 모드로 쉬엄쉬엄 오르는데, 갑자기 저 멀리에 차가워 보이는 연두색 불빛이 반짝 했다가 사라진다. 전봇대나 어디 달린 LED일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또 옆에서 반짝 하고 흐느적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는데 왠지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는 것 같다. 오래 사용한 노랑 형광펜처럼 약간 거무죽죽한 요소가 들어 있는 노란색-연두색 중간쯤 되는 광원..... 뭐였더라?

반딧불이다!

일단 페달은 계속 저으며 앞으로 나간다. 그러면 가끔 완전한 암흑 속에서 불빛 하나가 하나씩 조용히 밝아졌다 조용히 어두워지며 까만 공간에 자국을 남긴다. 몇마리나 볼 수 있을까 하고 숫자를 세기 시작하니 이젠 한 시야에 둘, 셋씩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놈은 나랑 정면충돌할 뻔 하다 겨우 비켜가기도 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눈 앞에 불빛이 바글바글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없나 싶으면 지루하지 않게 하나 둘씩 반짝여 주며 20여분동안 많은 반딧불이와 함께 지냈다. 나중에 이 시기에 오면 또 볼 수 있으려나.
어차피 폰카로 담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지만, 배터리가 빈사 상태라 시도도 못해본 것은 조금 아쉽다. 

반딧불이들이 사라지니 곧 저 멀리 인간이 만든 불빛이 하나 보이고, 가까이 가보니 가로등이 하나 서 있다. 정동진으로 갈라진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가로등이었다-_-...그쯤부턴 이제 가끔 민가도 몇 개씩 있고, 길도 내리막으로 변했지만 아직 한 가지 걱정이 남아 있었다. 5년전에 정동진 가는 길로 갈라진 뒤의 기억은 분명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가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왜 뜬금없이 산 속에서 헤메고 있는가. 해안도로는 도대체 언제 나올까. 해안도로 나오고도 꽤나 달려야 하는데 등등. 결국 빈사상태의 휴대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지도를 켰더니만
어라 500m도 안남았네?
애초에 5년전이랑은 다른 길이었던 것...

어쨋거나

다 왔다!!!!!!
저기 흔들려서 주황색 케이크같이 찍힌 물체가 산 위의 여객선이다.

도착했으니 인증샷. 20시 48분.
태어나서 두번째로 와본 정동진인데 두번 다 혼자 온 건 좀 슬프군요

역 앞에서 잠시 숨 좀 돌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방 잡았냐며 호객행위를 한다. 이 근처 숙박은 당연히 비쌀 거라 생각하고 찜질방에서 잘 생각이었으나 일단 가격이나 한번 물어보니 5만원을 부른다. 딴데 좀 돌아다녀 보겠다고 하니 깎아 주겠단다. 4만원.
좀 망설였더니 3만원으로 내려간다. 어제 잔 민박이랑 비슷한 값이니 이정도면 합리적이고, 오늘 비도 많이 맞아서 찜질방은 좀 불편할 것 같아 모텔로 결정. 꽤 깎았으니 현금으로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돈 뽑아 가겠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돌아가다가, 내가 역앞에서 밍기적거리는 걸 보고 카드로 해주겠다고 한다. 아직 여름인데 확실히 비수기이긴 한가 보다.

씻고 옷갈아입고 낮에 푸욱 젖은 소지품들을 방에다 버라이어티하게 널어놓은 뒤 밥을 먹으러 나간다. 근데 역시 관광지 아니랄까봐 다 횟집이니 조개구이니...혼자 먹긴 참 부담스러운 메뉴들. 가끔 평범한 밥집을 발견해도 22시경이라 이미 닫았다.

바지락 칼국수를 선택했는데 몹시 실망...육천원이나 받으면서 바지락 함량이 삼천원짜리 학교식당 수준이라니

오늘의 목표도 달성했겠다, 캔맥주 들고 밤바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니 이게 행복이지 싶다.
구름 때문에 별이 하나도 안 보인건 조금 아쉽다. 근데 보였으면 잠은 다 잤을걸?


이렇게 여행 둘째날도 저물어간다.











라고 쓰고 싶었는데 자러 숙소 돌아와서 한참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

숙소에 돌아와 바퀴에 묻은 모래를 물로 헹궈내고 있는데
갑자기 '빵' 하는 엄청 큰 소리가 나며 뒷바퀴가 주저앉았다... 저녁때 장착한 새 튜브인데 이게 무슨 낭패야
아마 뜨거운 물로 씻어내느라 공기가 팽창해서 터진거라 생각했는데, 그정도 온도차로 140psi를 견디는 로드자전거 튜브가 터지나?

이렇게 갈기갈기 찢어져서 때울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저런 식으로 튜브가 터진 건 처음봤다. 보통 타이어는 멀쩡하고 안에 있는 튜브에만 펑크가 나는 경우는 바늘구멍만한 구멍이 뚫리기 때문에 항상 펑크 때울 땐 어디가 터졌는지 찾는 게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터진 흔적이 저랬을때 원인을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없어 무념무상으로 저녁때 펑크난 튜브를 때워서 장착했다. 그리고 바람을 넣는데 100도 되기 전에 또 '빵' -_- 오 마이 갓

여기 쓰레기 하나 추가

그리고 더운물 따위가 아닌 진짜 원인을 찾음

네 타이어가 찢어졌네요

타이어가 찢어진 상태에서 튜브에 바람을 넣게 되면 찢어진 틈으로 튜브가 부풀어 오르게 되고, 이번처럼 폭음과 함께 튜브가 터진다. 일단 응급처치가 가능한 건이긴 한데 일단 이 시점에서 너무나도 피곤해서 내일 아침으로 미뤄버리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기절한 듯 잠들었다.


둘째날 결산

고도 프로파일 깨알같다. 높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낙타등
이날 elevation gain이 1300m로 미시령 넘은 마지막 날보다 높다. 진정 티끌모아 태산


181.6 km, 9시간 40분 주행.
06:40am 출발 20:40pm 도착

지출내역
숙소 30,000\ 
밥 13,000\ 
기타 보급식량 합해도 60,000\ 미만
(사실 중간부터 적는걸 까먹어서..)

덧글

  • SunLee 2013/06/13 12:07 # 삭제 답글

    영종대교 자전거 라는 검색어로 타고 들어왔는데, 자덕 생활이 화려 하시군요.
    역시 650c TT로 전국 투어는 무리군요. XC 에 로드용 타이어 달고 편한 자세로 다니는게 짱인듯.
    재밌습니다.
  • 2014/11/21 18: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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